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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자살공화국 오명, 너희 정치인들 모두가 자살원인 제공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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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자살공화국 오명, 너희 정치인들 모두가 자살원인 제공자들이다

정부측의 그 어줍지 않은 자살예방 대책, 거둬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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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형대기자 

 

31살의 나이에 세코날 마흔 알로 생을 끝내버린 어느 한 여자. 그가 죽은 지 59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그를 잊지 못한다. 죽음의 유혹 속에서도 끊임없이 살고 싶어 했던, 완벽한 사랑인 모성을 갈망하고 딸을 통해서 신에 이르겠다고 한 그가 왜 죽음을 택해야 했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그를 잊지 못하는가. 죽어도 죽지 않는 그 여자. 무엇이 그 여자를 살아있게 만드는 것일까. 이 글은 최근 대한민국이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입었다는 것에 주목하여 자살예방, 또는 방지 켐페인을 벌이고 있다는 데 주목하여 한 삶의 종장을 인위적으로 차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죽음을 선택한 당사자에게 있어서는 불행이 아니라, 행복과 쾌락의 선택이었을 것이라는 죽음과 절정의 색스와의 상관관계에서 그 미학적 효과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가 이내 이를 거두어 들이고 정부 측의 그 알량한 자살예방 대책을 비판하는데 할애하기로 했다.

 

특히 한 인간의 자살로 파급되어지는 충격과 불행은 남겨진 사람들의 몫으로 치부되는 것이지, 죽음을 선택한 당사자의 불행이라고 치부해서는 안된다는 게 팔자의 생각임을 에둘러 전제한다.

 

세코날 마흔 알로 생을 끝내버린 한 여자가 있었다. 1965111일 일요일 아침이었다.

그는 지상을 떠나 꿈꾸던 자신의 별을 찾아 떠났다. 매순간을 절박하게 살았으니 죽음에도 절박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느닷없는 죽음은 그의 삶을 더 신비하게 만들었고, 나는 그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의 죽음을 미화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여자는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라는 의문에서 이 글을 유추해 보면, 절망과 불행과의 담을 쌓기 위해서였울 것이라는 점까지 부정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재난이나 중병(重病) 같은 위기를 제외하고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게다가 다행히도 일상의 분주함과 습관은 언제나 삶의 부정적 사고로부터 우리를 방어해주는 기제가 작용하고 있어 쉽게 생을 포기하지 않는 법이다. 우리를 미망(迷妄)에서 구출해주는 것도 대부분은 이와 같은 일상성의 질서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살자들의 대부분이 정상적인 생활을 박탈당하거나 좌절한 사람들에게 많다는 것이 이를 반증하기도한다. 정상적인 생활리듬은 자살충동을 효율적으로 방어해주는 처방전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는 성경(16: 19-25)’에는 오직 돈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을 비판하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이야기가 적혀 있다. 물욕, 명예욕 권력욕으로 자기밖에 모르는 부자는 귀족과 그의 친구들을 대문 안으로 불러들여 날마다 파티를 열어 축제를 즐긴다. 반면에 춥고 병든 대문 밖의 거지 나사로는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음식 찌꺼기를 주워 먹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 일 번지 국회의사당의 패거리들과 흡사한 광경으로 우리 국민들은 날마다 나라를 걱정하며 우울증과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는데,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자살을 부추기는 생지옥을 만들고 있으면서 막상 자살공화국이라는 치명상을 입을 것이 두려워 자살예방 켐페인을 벌이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죽음이라는 극단의 상황을 막는다는 게, 보건복지부나 대한젃십자 주도로 벌이고 있는 보여주기식 스테이지 매너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텐데 기히 편성된 예산을 명시이월이나 사고이월을 만들어 불용처리 시키지 않겠다는 지극한 발상만으로 호들갑을 떨고 있는게 아니던가.

 

하여간 현재는 자실로 인한 죽음을 부정하고자 하는 주체는 정부인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 그들 정부관료와 위정자들은 죽음의 소스를 제공한 원인 행위자들이다.

 

통속적 의미로서의 사람들의 현 세계는 성과 죽음의 일방적인 폭력으로 구동되는 공포스러운 곳으로 성교를 통해 육체로 탄생한 인간들이 죽어 부패하고 그 폭력의 과정 속에서 또 다시 태어난 인간들이 죽어 부패하는, 생사의 끊임없는 연쇄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주체는 생존을 향한 본능적 욕구로써 유지되는 탄생과 죽음의 끊임없는 순환을 혐오한다.

 

더러움, 끈적임, 냄새에 대한 혐오감은 죽을 수밖에 없는 물질적 육체로 태어난 자기를 부정하고자 하는 주체의 기본적인 감정 상태가 된다. 주체에게 일상은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먹고, 배설하고, 성교하는 과정의 무한한 반복과도 같다. 점액질의 이미지로 표상되는 일상은 주체에게 한치의 비켜섬도 허용하지 않는 완고한 폐쇄성을 지니며, 주체는 죽음으로 침윤된 일상 속에서 불안을 느끼고 있지만, 정부와 위정자들은 이러한 세상 몰골을 방치한다.

 

한다미로 좃같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개새끼들이 짜놓은 자살예방 정책에 동의하기도 어렵거니와 야당의 이재명, 조국, 박지원 같은 종자들, 여전히 대통령의 언저리를 맴돌면서 의료대란이나 조장하고 선동하는 자들이 득실거리는 한 언제든 이 사회가 싫어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만 갈 것이다.

 

이 사회에서 자살현상을 정치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차원으로 접근하는 정부와 위정자들의 자살예방 정책과 대책은 허구다. 특히 안전망 확충에서 불공정한 노동시장개선에 이르기까지 사회경제 정책이 가장 중요한 자살 예방 정책이 되지 않으면 한계는 분명하다.

또한, 자살 시도자와 유가족, 주변인에 대한 정책적 노력이 없으면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법을 만들고 제도도 만들었지만, 정작 이 법을 재안하고 입법한 이 땅의 국회의원 개샊리들의 인성이 바뀌지 않는 한 자살예방 정책 효과는 기대만큼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경고하면서, 사실은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에 이르면서 국민의 자살률이 OECD 국가중 이미 1위로 올라섰다고 하는 점도 너희 좌파 부시래기들도 알아야 할 것이다.

 

살아서 즐기는 쾌락의 섹스보다 단 한번의 죽음 가운데서 얻어지는 쾌감이 좋다는 이 기도 안차는 속설은 지면 관계상 여기서 줄이겠지만, “유대 민족이 안식일을 지켜온 것이라기보다는 안식일이 유태인을 지켜온 것이라는 지극한 현상에서 지혜를 찾기 바란다.

기히 태어나 멀쩡하게 살아야 할 사람들도 추스르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저출산의 문제대책을말하는 현상을 뭐라고 해야할까 얼굴이 얽었거든 검지나 말지라는 말로 함축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