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1 (토)
법을 파괴하고 유린한 추미애의 이재명 바지사장 입성
조대형 대기자
의회(議會) 혹은 국회(國會)는 관행과 불문율(unwritten law)이 지배하는 국가기관이다. 공식화된 법과 절차를 엄격하게 준수해야 하는 행정부나 사법부와 달리 스스로가 따라야 하는 의사 절차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정된 법규보다는 규범과 선례, 용례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에서 국회는 특별하다.
국회는 합의에 의해 움직이는 국가기관이다. 하나의 조직 원리나 위계적 구조로 움직이는 관료제나 기업, 학교, 교회 등과 비교해 보자. 이들 제도나 기관과는 달리, 국회만이 복수의 대립 세력에 의해 공동 운영된다. 정당 내지 교섭단체라고 불리는, 서로 다른 ‘정견과 가치, 이념, 이익’을 가진 집단들이 다투고 경합하면서도 주기적으로 ‘평화협정’을 맺는 것을 기관 운영의 원리로 삼는 매우 특별한 제도라는 뜻이다.
국가 간 관계가 외교와 협상의 노력이 없다면 쉽게 갈등과 전쟁 상태로 빠질 수 있듯이, 국회가 그 특별한 운영 원리에 맞게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어떤 민주주의 국가도 적대와 갈등을 다룰 수 없다. 안정된 질서와 구성원 전체의 통합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회야말로 현대 민주주의자들이 발견한 최고의 ‘평화 기획’이 아닐 수 없다. 제도적으로는 중세 ‘신분 의회’에 그 기원을 두고 있지만, 그 뒤 시민혁명과 의회주권, 입헌주의를 거쳐 야당의 출현과 다원주의적 대표의 원리가 결합해 만들어진 오늘날의 의회는 완전히 새로운 민주주의 기관이 되었다.
대통령은 없어도 민주주의는 가능하다. 하지만 의회 없는 민주주의는 있을 수 없다. 민주주의 국가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데 있어서 의회의 역할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영국,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룩셈부르크, 벨기에, 스페인 모두 왕 또는 군주가 있고 정식 명칭은 왕국이나 공국이지만 동시에 민주주의 국가들이다. 의회가 주권기관 내지 제1의 정부 기관으로서 역할을 하기에, 입헌군주정이면서 동시에 민주정 국가들이다.
민주주의는 의회가 제 기능과 역할을 하는 곳에서만 운영될 수 있다. 그래서 영어로 국회의 기능과 역할,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
‘말하다’는 뜻의 고대 불어에서 온 ‘Parliament’나, ‘결합하다’는 뜻에서 온 ‘Assembly’,‘함께 가다’는 의미의 ‘Congress’, ‘입법부’라는 기능을 가리키는 ‘Legislature’, 매일 모이고 받는 ‘일당’(日當)이라는 뜻에서 온 ‘Diet’ 등으로 불리는 국회나 의회라는 이 특별한 기관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각 나라의 민주주의가 가진 유형과 특징과 발전 정도를 살펴보게 된다
그런데 출범 직전에 있는 제22대 국회가 자칫 범죄소굴의 진원지가 된 것은 이미 결롸로 나타나 있고, 입법부를 대표하는 국회의장이 삼권분립의 한 축이 아니라 민주당 이재명의 바리바지사장이 출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이 형국에 그 바지사장을 찬양하여 빨아주는 딸랑이가 전격 전면애 나섰다. 언제나 아군의 뒷전에 공격은 일삼으면서도, 민주당을 향해선 찍소리도 못하던 자가 민주당 인사를 향해 ‘찍’하고 할거하길래 웬일인가 싶었더니, 그 진위는 추미애가 가는 국회의장 입신의 길에 양탄자를 깔아주는 것이었다.
홍준표의 추미애에 대한 지극한 동지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아니다는 것은 아니지만, 한마디로 추미애(66)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이 '국회의장감'으로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홍준표는 지난 13일 소통채널 '청년의 꿈'에서 "추미애 당선인이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 나서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국회의장 할만하다"며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추 당선인이 6선으로 22대 국회 최다선자 중 한명, 여성이라는 점 등을 볼 때 어느 한구석 빠지는 데가 없다는 것이다.
홍준표시장의 이러한 추미애에 대한 이러한 촌평이 또 다른 사심이 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추미애가 과거 법무부 장관시절 홍준표 자신의 친정인 검찰에 대해 감찰권과 수사지휘권, 인사권 남발을 하고 “법질서를 수호해야 할 자가 앞장서서 법치주의를 파괴하고 있었다 것”몰랐을리는 없다.
한마디로 법치주의의 위기를 가져온 자가 추미애였다. 그런데 이러한 자가 국회의장이 되는 것이 사실로 나타난다면, “정치가 사법을 흔들고 있는 형국이 될 것이 너무나도 분명하다.
사람들은 “선출된 권력이 법치주의보다 우선’이라고 믿는 경우가 있는데 민주주의적 가치가 포퓰리즘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막는 보루가 법치”라는 것이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수레의 두 바퀴처럼 때로는 보완하고 때로는 견제해야 하지만, 추미애나 추미애가 국회의장감이라고 추켜 새우는 홍준표는 민주주의 정치에서 강조되는 균형과는 거리가 먼자들이다.
한다미로 추미애와 홍준표는 ‘초록은 동색’의 독고다이들이다.
이미 제22대 국회는 원 구성을 비롯해 출발부터 난장판의 국회가 점쳐진다. 192석이 넘는 거대 의석을 차지한 야당과 108석을 겨우 획득한 여당은 토론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기보다 대립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 예상된다.
특히 법을 파괴하고 유린한 추미애가 국회의장이 되는 현실에서 정치권은 양극단으로 분열될 것이 확실하고, 야당 대표 이재명과 조국의 이기주의적 자기 정치로 인해 국민들의 정서도 분열되고 말 것이다.
갈등의 골은 또 양극단 진영의 끊임없는 거리 집회로 이어질 것이고, 동원된 인원이 어느 쪽이 더 많은가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기까지 할 것이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문제가 걱정인 대다수의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이 정치 이슈들을 폭발시키고 그것에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하
며 토론과 협치를 저버린 국회의 모습에 실망을 해본들 이 현상 역시 국민들이 자초해 낸 것이다.
윤석열대통령을 지키자는 경호 안전판의 정치구호와 윤석열을 때려 누피고 이재명의 방탄정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만 난무했던 지난 총선을 통해 무능하고 처참한 양아치들이 득실거리는 입법부에 무엇을 더 기대하겠냐만은 국회의장이라는 인물마져 조폭의 두목가튼 인물로 채워야 하는 정치권이 야속하기만 하다.
제22대 대한민국 국회dp 기대할 것이 없다. 대한민국 입법부의 기강은 땅에 떨어졌고, 원칙과 예가 사라진 것은 오래이다. 다만 통하는 것은 억지뿐이다. 저렇게 기물을 파괴하고 마음 놓고 싸워도 국회의원들은 왜 법적 구속을 받지 않는가? 국회의원들이여 제발 자정하라.
후한(後漢)의 역사를 다룬 ‘후한서’의 ‘당고열전(黨錮列傳)’ 서문에 나오는 말로 “뜻이 같은 무리와는 당을 만들고 뜻이 다른 자는 공격한다.”는 구절이 있다.
우리의 정치와 너무 맞아 들어가는 말이다. 그것을 ‘당동벌이(黨同伐異)’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