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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롯가수의 열정으로 안산 음악예술의 극치를 창조해 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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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롯가수의 열정으로 안산 음악예술의 극치를 창조해 내겠다.

 

 

 

정열의 뮤직라커 김민주의 열창 

 

월드 트롯가수협회 경기도 안산시지회 지회장 트롯싱어 김민주 

 

김민주 안산지회장은 기존의 대중 음악인들의 영향에서 벗어나 트롯 싱어로서의 자신의 음악세계를 펼쳐나가는 현실에 있다. 소위 ‘걸작들이 숲을 이룬다’고 일컬어지는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이다. 자신이 처한 음악적 운명이나 정서적인 상태를 외부로 표출시키는 특징이 있다고 하여 외향화 시기라고 부른다. 깊이와 무게가 있는 트롯 싱어 김민주의 음악세계는 고유의 멋과 흥을 담고 있다. 대중음악인으로 안산시의 문화예술 정신을 담아 내겠다는 다부진 각오를 갖고 있다. 

 

안산 대부도에서 지역 음악 예술문화 장인으로 활동하면서 트롯 음악 예술문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김민주회장을 안산시 대부도의 한 카폐에서 만났다.

 

“니의 노래는 내 개인과 사회의 기억과 역사를 담고 있다. 어느덧 쉰 세대가 된 지금은 좋아했던 노래들의 아름다운 노랫말을 곱씹고 노래에 얽힌 기억들을 회상한다. 우리 가요와 사회의 반세기를 이곳 안산의 대부도에서 풍요롭게 펼칠 계획이다. 나이가 든다는 게 기억이 풍성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걸로 최근에서의 체감했다.” 




기자와 인터뷰 전, 트롯싱어 김민주가 기자에게 던진 첫 화두였다. 김민주라는 트롯싱어. 전국의 무대가 있는 곳은 가리지 않고 돌며 거칠 것 없이 뻗어 나오는 목소리로 인생과 음악을 노래했던 가수가 김민주다.

 

“그때 난 여느 사람들처럼 조숙하게 인생을 관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서른 무렵 ‘나도 서른이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잠시 들기는 했지만, 내게는 앞으로 뻗어 나갈 날이 더 많았다. 멀어져가는 날들을 아쉬워할 겨를이 없었다.

 

‘서른 즈음에’가 마음 깊이 다가온 것은 마흔이 넘어서였다. 그리고 나의 히트곡이기도 한 {대부도의 연가}를 부르다가 “머물러 있는 청춘이 아니라 나이가 먹었다는 것을 알았다”라는 트롯싱어 김민주의 발언에서 기자 자신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언제 세월이 이렇게 흘렀지?’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청춘의 마지막 날은 언제였을까?’

매혹의 트롯싱어 김민주의 모습

 

언제가 끝이었는지도 확실치 않게 청춘은 그렇게 스르륵 사라져버리고 불혹의 나이에 ‘대부도의 연가’, ‘갈바람’, ‘얄미운 세월’ 이라는 곡으로 마이크를 쥐고 노래하고 있었다. 항상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다고. 말하는 김민자의 토로는 그의 가수 이면에 또 다른 함의를 느낄 수 있었다. 

 

해석하는 힘은 새로운 형식을 내놓는다. 대중음악의 기획자이기도 한 그가 얄미운 세월이라는 노래로 가수에 데뷔한지도 15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 세대에게는 전혀 친근하지 않는 노래들에 대해 스스로 해석 주체로 나선다는 행위 자체가 수고스럽지만 영예롭다. 

 

아마도 이 과정에서 필시 김민주의 노래에 대한 내밀한 음악적 분석 그리고 경이감이 따랐을 것이다. 스탠더드적 요소가 풍부하지만 이제 와서는 트로트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장르 분류가 얼마나 어정쩡한지 알았을 테고 그가 살던 분위기 있는 음악 시절에 발라드 음악 터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깨쳤을 게 분명하다. 그의 히트곡 「대무도연가」라는 노래가 증명한다.

 

여기서 음악적 관점이 잉태했기에 그의 해석은 상투적이거나 상업적이지 않다. 단말마와 같은 통상적 리메이크는 얼씬할 수 없다. 관점, 그 바라보는 주관과 비전에 힘입어 가수 김민주는 트롯 재즈로 새롭게 해석된 것을 넘어 레전드 음악으로 부활한다. 

 

이런 그가 월드트롯가수협회 안산지회장을 맡아 아예 안산시 대부도에 상주하고 있다. 

 

그간 코로나 19 감염사태로 인해 가수들의 활동 무대가 크게 줄다 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토로하는 가수들이 많은데다가 특히 공중파 방송의 프로그램 축소가 가수의 활동은 물론 가요계 전체의 침체 원인이라는 목소리가 높다는 지적에 대해 김민주지회장은, 

 


“나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는 넓은 의미에서 가수들의 일자리 창출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여러 채널 관계자들과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방안이 오가고 있지만 말보다 성과가 중요하기 때문에 지금은 자세한 내용을 아껴두겠다.”

 

월드트롯가수협회 안산시지회 지회장인 그가 이름 뒤에 이런저런 직함의 사족을 붙일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트롯싱어라는 것과 월드트롯가수협회 회장 이라는 직함 ‘생략’은 오만보다는 담백에 가깝다. 오직 음악의 아취(雅趣)로 대중을 만나고 싶은 게 김민주의 소망이기 때문이다. 

 

그는 당초 “본지와 인터뷰를 하지 않으려 했으나, 이 시대를 고뇌하는 음악인으로서 언론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도 뜻 있겠다 싶어서 응한다”고 했었다. 그러나 인터뷰의 묘미는 역시 서로 예정한 것이 아닌 즉흥 대사, 즉 애드리브에 있다. 그는 자신이 겪어온 일들에 대해 표현을 지극히 절제하면서도 진솔하게 전달했다. 또 이 시대의 정치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언급은 삼가면서도 할 말은 하는 태도를 보여줬다. 

 그는 음악인으로서 자신 나름대로 말할 방법이 있다”며 웃었다. 그 방법으로 그가 사용한 언어들은 풍성하고 여유로웠다. 그 광휘는 듣는 이를 깊고 넓은 성찰의 마당으로 이끌어 가기에 충분했다. 

 


“음악인은 예술의 의식과 무의식·잠재의식까지를 탐색하고 거기서 뭔가 이야기를 풀어낸다. 예술가보다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의 음악인들은 과학자적인 탐색을 한다. 가수의 의식이 복잡해지고 상징도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수의 현실은 답답하다. 작은 존재를 가지고 그 안에서 뭔가를 찾아야 한다. 겨자씨만 한 촉매가 오래오래 조금씩 자라나기도 하고 갑자기 화약이 터지듯이 불붙기도 하고…. 그 작은 것으로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것. 모든 직업 중에 가수가 가장 참담한 듯 하다. 

 

음악인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평생 사랑을 갈구한다. 작품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갈구를 품어서 부풀리고 강하게 만들고 그 안에 어떤 질서 있는 보편성을 배합해서 만드는 것이다. 음악적인 요소를 기본으로 여러 사람이 함께 나누는 보편성 속에 내 마음도 이렇다는 것을 내놓는 것이니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당신이 그 나이에?’라고 할 수 있겠으나, 누군가의 그 마음을 찾아본다면 제 안에도 그게 있다고 생각한다. 가수는 다른 사람과 자기의 마음에서 뭔가를 끄집어내서 실오라기를 철사로, 철사를 강철로, 통틀어 인간적인 말로 감정에서 솟아나는 글을 멜로디로 엮어 내는 사람이다.”

 


그는 한국 트롯 음악의 산맥에서 사랑, 즉 연가의 한 봉우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남녀 간의 간절함뿐만 아니라 절대 존재에 대한 사색적인 그리움을 담고 있다. 

 

트롯싱어 김민주는 안산음악 사회에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었고, 사실 월드트롯 가수협회 안산지회장 역할을 하다보니까 자연 스럽게 본업인 음악문화예술계 이외, 특히 평생 정치 쪽과 거리를 두고 살았다. 가수는 권력이 아니라 예술로 살아남는다는 소신 때문이다. 

그러나 안신시 문화예술 정책에 대해 고민을 하고, 어울림의 사회여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난 후부터는 사람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만나고 있다. 

 

국내 월드트롯가수협회 안산시 지회를 이끌고 있는 그는 어깨가 무겁다. 불모지에 개척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로 무대음악의 퇴조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처럼 여겨진다. 가요계 안팎에서 객석을 되찾기 위한 움직임이 있으나, 퇴조의 대세를 바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관광산업과 문화 융성을 기치로 내건 안신시와의 협력을 통해 안산 음악문화 예술역사에 남을 만한 신기원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말 그대로 문회예술 진흥을 꾀하겠다는 것인데, 안산시가 내세우는 문화예술에 대한 구호에 걸맞게 구체적인 실천 의지를 갖고 있다고 토로했다. 

 

―월드트롯가수협회 안산시지회장 취임 후 시간이 꽤 지났다. 당초 다짐은 어느 정도 이뤘나.

 

“협회 차원에서만 말하자면, 우리의 일이 안산지회의 이목을 크게 끌었다고 생각한다. 명망 있고 영향력 있는 주민들로부터 음악인들의 활동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음악인의 본질은 고독한 창작 아닌가. 안산시에 와서 예술인 단체를 운영하는 것이 의미가 있나.

 

“안산은 니의 고향이다. 나의 태를 버린 곳이고, 나의 대중음악의 혼을 묻을 곳이 안산이다. 특히 월드트롯가수협회는 두 가지 기능을 겸하고 있다. 하나는 음악문화 예술인들이 모여 서로 자극을 주면서 작품 의욕을 북돋워 주는 것, 또 하나는 결집된 힘으로 창작된 작품을 소비해 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기능을 역동적으로 하는 게 월드트롯가수협회다. 창작은 혼자 하는 것이지만 그 동기나 의욕은 서로 간에 자극과 경쟁을 통해서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월드트롯가수협회의 위상이 안산시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나..

 

“월드트롯가수협회 안산시지회는 많은 음악 예술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따라서 협회의 활성화가 크게 예상된다. 물론 그러다 보니 비교적 역량의 질이 떨어지는 음악 예술인인들도 수용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꼭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한국 음악문화예술의 수준이라는 것은 모든 예술인의 총체적 에너지의 결과다. 따라서 우리 협회는 많은 음악예술인을 외면하지 않고 예술 에너지의 근원으로서 수용할 것이다다. 그런 가운데 절차탁마해서 음악을 끌어올리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민주 회장은 인터뷰에 응한 여느 특정인과 달리 사전 질문지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치 질문지를 보고 준비한 것처럼 시종 막힘 없이 답변했다. 목소리는 나지막했으나 힘이 배어 있었다. 그와 함께 일해 본 이들이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외유내강형이라고 하는 이유를 짐작하게 했다.

 

―음악인 중에도 사색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삶에 무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음악은 기본적으로 상상의 세계다. 그래서 듣는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신장시켜 주는 것이다. 어려서 문학 교육을 하면 상상력이 높아진다. 상상력은 모든 문화, 과학의 근저가 된다. 모든 문명은 문학적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이 비생산적인 게 아니다. 생산적 창조물이다. 당장의 실용성을 생각하면 필요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인류가 이상(理想)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음악이 근저에 존재해야 한다. 물신주의, 생명경시 등 문명의 위기에 대해 절실하게 사색하는 분야도 음악이다.”

 



―현재 안산시도 문화예술 분야의 지원 예산이 있다. 안산시는 지원 제도를 실효성 있게 바꿔서 수요자에게 직접 가닿게 하겠다고 한다.

 

“실효성 있는 지원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안신시청이 지원대상과 직접 만나서 의견을 개진하고, 나 또한 안산시의 도움이 되는 문화예술 이벤트를 만들어 문화예술 정책으로 제안하도록 하겠다. 당초 포도음악제를 추진하료 했으나, 이름을 바꿔서 대부도 가요음악제를 개최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한국의 트롯 음악이 세계음악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보나. 

 

“한국 현대음악이 국제적으로 진출한지가 그리 오래지 않다. 때문에 그 층이 그다지 두껍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트로로 가수들은 일본을 빼곤 다른 나라 진출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 문제도 월드트롯가수협회의 대승적 차원에서 전부 수용해서 한국 음악의 도가니 속에 용해시켜야 한다. 한국의 음악적 에너지 총량을 ‘100년의 층’을 확장할 수 있는 데까지 넓혀야 한다. 동시에 우수한 음악인들이 노래를 할 수 있는 유인책이 마련돼야 한다. 예를 들면 창작을 전공하는 이들에게 장학제도 확충, 취업 보장, 이런 것이 음악계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100년 역사가 녹아서 우리 음악의 총량이 돼야 한다는 이야기에 공감한다. 월드트롯 안산시지회장으로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

 

“앞에서 말했지만, 대부도가요제를 기획하고 있다. 올 10월에 개최하려 한다 특히 이를 바탕으로 안산시 음악 발전을 위한 의제를 도출하고 문화예술 도시와 접목되는 이벤트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우리 협회는 중앙정부의 문화체육관광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하고 향후에도 지역별 특성에 따라 재정이 지원되는 법정문화단체 선정에 월드트롯가수협회가 포함될 수 있도록 중앙회장과 최선을 다할 계획을 하고 있다.”

 

특히 신지회장은 이어지는 발언에서, “안산 대부도의 수려한 자연에 문화예술 콘텐츠를 접목해 바쁜 일상 속에서 여유와 휴식을 통한 지역주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여가문화도시를 조성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평생 음악을 직업으로 갖고 일을 하면서도 꾸준히 이벤트기획을 할 수 있는 비결은.

“음악 일을 핑계로 문화예술적 이벤트 사업을 기획하지 못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음악을 하든 작곡 일을 하든 문화예술인은 이벤트기획에 출중해야 한다.”

 

―문화 예술계 일각에서 ‘문화예술 정치인’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같은 질문에 대해 그는 “외향적이지 못하고 수줍은 성격에 가까운데, 이상하게도 문화예술인 단체에서 직분을 많이 맡게 됐다. 이것도 운명이라 생각한다”며 “‘문화예술 정치’라는 말의 속뜻을 잘 알고 있지만, 문화예술계를 위해서 누군가 해야 한다면 감내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라는 근본적인 답변을 내놨다.

 

―일반 시민들이 음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친근하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 구색 맞추기가 아니라 정말로 음악을 생활 속에 가깝게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음악에 대한 애정이 있으면 공부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고, 의욕이 있으면 어떤 방법으로든 공부하게 돼 음악을 잘 하는 바탕을 갖출 수 있다.”



‘예술인’에게 가졌던, 날카로울 것이란 선입견과 달리 김민주회장은 정감이 있었다. 

세심하게 기자를 배려해 주었고, 여전히 열정적이었다. 김민주지회장이 음악인으로서 가장 아끼는 곡이 자신의 출세곡이자 데뷔곡인 {얄미운 세월}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그는 대부도연가라는 곡에 대해 “세상이 끝나도 존재할 음악”이라고 말한 바 있다.“대부도연가의 곡은 누구라도 들으면 혼이 맑아진다. 작곡의 테크니컬적으론 굉장히 챌린징(challenging·도전의식을 북돋우는)하다. 이 음악을 나는 곳곳을 다니며 들려주고 싶다.”

그는 평생 음악에 깊이 침잠해 온 고독한 예술가로서 음악을 함께 해 온 동료들에게 오늘의 현실에 대해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특히 김민주회장은 올겐, 드럼, 섹소폰 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다. 

 

트롯싱어 ‘김민주’라는 이름으로 어제가 아닌 오늘을 살고 있다. 그의 오늘은 어제까지 해 온 일들과 미련없이 결별할 수 있는 용기이자, 결단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그의 모든 변화 또는 진화는 음악에서 시작되고 완성된다. 삶의 대부분의 지표와 중심이 음악에서 발현되고 있기 때문인지, 그는 음악 얘기가 아니면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 인터뷰하는 동안 그를 지켜보며 느낀 건 ‘트롯싱어 김민주’ 는 음악에 미친 뮤지션’이라는 사실이다.

 

황홀함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트롯싱어 김민주 

 

―김민주의 음악’엔 기쁜 노래에도 슬픈 연민의 정서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서라는 것은 시대마다 달라지지 않는가? 1980년대와 90년대 정서가 다르고, 또 2000년대의 정서가 바뀌잖는가. 우리의 정서는 우리도 모르게 변화해왔다. 

옛날에는 통곡 같은 한의 정서가 있었지만, 지금 시대엔 이런 정서도 희석되고 있다. 그래서 예전에는 늘 노래를 할 때, 통곡하듯 불러서 듣는 이와 슬픔을 공유해야 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절제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대부도연가’)는 제 노래 가사처럼, 가사는 경쾌하지만, 한편으론 슬픈 소리다. 그래도 꾹꾹 참아내는 게 필요한 시대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김민주를 한국의 트롯 싱어로서 실력있는 뮤지션이라고 거침없이 외칠 수 있는 것은 현재 대중음악이 걸어가고 있는 형태와 내실을 예리하게 뚫어보고 있는 혜안과 수십 년간 거르지 않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성실한 태도 때문이다. 그는 ‘음악’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신을 채찍질하며 성장시키는데 온 힘을 기울여왔다.

 

―음악에 대해 선천적인 능력과 후천적 노력 중 어느 쪽에 가깝다고 생각하나.

 

“타고난 것도 영향이 있겠지만, 후천적인 노력이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비율로 치면 3대 7 정도 될까? 돌이켜보면 나는 음악을 너무 좋아했던 것 같다. 지금도 음악이 너무 좋다. 좋은 곡을 들으면 ‘나도 꼭 이런 곡을 해야지’하는 다짐을 하게 되니까, 노력하는 게 아닐까 싶다.”


요염의 매혹적인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는 가수 김민주 


―음악가는 사실 대중의 입장에서 판단하기 힘든데, 작곡이나 선곡 능력이 대중과 잘 호응하는 것 같다.

 

“음악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선택 과정에서 더 냉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내가 좋아하면 관객도 좋아하는 것 같다. 음악은 멋이 아니라 순수함 그 자체라고 본다. 사람들이 좋아하면 그게 훌륭한 곡이다. 음악 지식 아래서 만들어지는 곡도 있고, 대중이 쉽게 좋아하는 대중적인 곡도 있지만, 나는 대중적인 것을 더 원하는 편이다.”

 

―음악을 할 때, 늘 자신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 같은가.

 

“성격일 수 있다. 하하. 어떤 때는 ‘내년에는 좀 쉬면서 유럽 여행도 다녀야지’다짐하면서도 늘 생각에 그치기 일쑤다. 어느새 무대에 처박혀서 고민하고 있는 절 발견할 때도 많다. 한 달로 보면 70% 정도는 음악에 할애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인생 아닌가?”

 

싱어 김민주가 한사코 거부하는 자신의 이름 앞에 붙이는 수식이 왜 필요한지 그 이유를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수식을 붙여야 비로소 그의 이름 석자 ‘김민주’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호기심과 기대감을 자극하는 트롯싱어 김민주의 내일이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조대형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