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0 (월)
[조대형대기자]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견제와 균형을 추구한다. 권력이 독재로 흐를 경향을 보이면 그를 제지하고 권력의 남용을 막을 세력이 형성돼야 하며 포퓰리즘이나 중우정치(衆愚政治)로 흐르지 않기 위해서는 대중의 무절제한 욕망에도 선을 긋는 태도가 필요하다. 법을 만들고 실행하며 그 행위의 합법성을 판단하는 권력이 입법, 행정, 사법부로 분립되어 있는 것 역시 그 일환이며 ‘만장일치는 무효라는 유대인들의 오랜 지혜 역시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요체의 반영일 것이지만, 이번 3.8 국민의힘 전당대회 결과는 그러한 흔적없이 윤석열대통령을 우두머리로 한 주류들이 진을 치게 됐다.
가령 지금 국민들은 윤석열대통령 심복에게 맞섰다가 졸지에 학살들을 당한 강신업, 조경태. 윤상현, 황교안, 천하람, 안철수, 나경원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바라볼까?
이들 비주류 정치인들이 윤석열대통령의 파시즘의 정적이었다는 이유로 흔히 강력한 ‘민주투사’ 쯤으로 묘사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또 하나 분명한 것은 김기현 신임 당대표가 점령군이 돠어 자신의 우두머리의 손발 노릇을 할 철저한 친윤파라는 것이고, 윤석열대통령의 무리한 당 장악기도가 배경에 깔려 있는 3,8 정적 대학살 비극의 주역 가운데 한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군가는 말한다. “장애물은 여전히 버티고 있다. 학살의 주역들이 참회하지 않는 한, 그들의 방해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여전히 정치의 주류로 행세하며 적지 않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의 딴죽걸기 구상을 하고 있을 것이다. 3.8 전당대회는 끝난 게 아니다.”
국민의힘의 3.8 전당대회는 윤핵관 부역자들과 용산 점령군의 결탁, 그들의 이념과 폭력성이 낳은 한국정치의 뒤틀린 현실을 배경에 깔고 있다.
3,8 전당대회의 정적 제거에서 가장 주목된 인물은 이준석 전 대표였다. 이미 그는 윤석열대통령 취임 직후에 찍어냈다. 그리고 정적들을 찍어낸 윤핵관들의 주류는 자칫 위험한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는 내부적인 불안 요인을 외부로 돌려 체제의 안정을 꾀하려 했던 역사가 말해주는 교훈이다.
섬나라 쥐새끼로 통하던 도요토미의 조일전쟁이나 나폴레옹의 광기, 김일성의 도발 등 근현대사의 예만해도 이를 잘 말해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현재 윤핵관들의 중심에 있는 장제원의원이다. 제5공화국 출범 당시 전두환의 오른팔이던 허삼수 계열 장성만 전 국회부의장의 아들이다. 독재의 그늘에서 독재정권의 기초공사를 도맡아 해온 장성만의 뒤를 이어 장제원의원 또한 윤석열의 권력체제 강화에 나설 수도 있겠지만 허수아비격인 김기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자신의 권력을 다져갈지, 아니면 2인자가 허용되지 않는 정치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알기에 김기현마저 제거할지는 미지수다.
문제는 불안하기 짝이없는 정적제거 학살자들의 내부사정보다 직접적인 대치상황에 있는 안철수의 분위기다. 김기현과 안철수는 틈만나면 돌팔매질을 했고 내편이 아니면 모두가 적인 분위기였다. 때문에 김기현 신임 당대표가 고위 당직자 임명작업에 본격 착수할 예정인 가운데, 그 '완결판'이 될 내년 총선 공천 개혁 등 인적 쇄신의 향배에 정치권 안팎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준석, 천하람, 황교안, 안철수 당은 아예 무소속 준비를 해여 한다는 우려들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국민의힘 내에선 ‘비윤’이란 표현은 일종의 금기어가 된 모습이다. 비윤계로 분류되는 한 정치인들은 아예 SNS에 아무런 글도 올리지 말라고 조언 받았다”고 귀띔했다.
사실 여권 일극에선 차기 총선을 앞두고 계파 갈등이 재차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친윤계가 대거 공천을 받을 시 비윤계 탈락자들의 반발이 거셀 것이란 예측에서다. 동시에 대통령실의 당무개입 논란 등이 발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치인이 두려워할 대상은 대통령도, 당의 실세도 아닌 오직 국민이어야 하는데, 이 지극한 상식이 무너지고 있다.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는 시대적 가치를 창조하는 고상한 작업이다. 그러나 그 수단인 권력을 잡고 그 권력을 유지.확장시키는 일은 비루한 짓일 수밖에 없다. 사실 ‘정치는 온갖 수렁일 뿐이다. 거짓말의 수렁, 정치자금의 수렁, 이전투구의 수렁 등을 건너갈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 정치인이 이 수렁을 건너다 익사체가 되거나 중상을 입기도 한다.
그래서 정치인이 이 수렁을 잘 건너기 위해서는 남다른 자질이 요구된다. 그러면 어떤 자질이 요구되는가. 그중에서도 후흑의 자질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국민 동의에 의한 지배체제가 확립되는 민주제인 경우 복잡한 심성의 유권자들 환심을 사야 권력을 잡고 그 권력의 기반을 공고히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후흑(厚黑)의 자질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필요악이라고 말한다.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에 공자(孔子)는 ‘정치는 얼굴이 두껍고 마음이 검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며 '후흑학(厚黑學)'에 입각해 정치인을 정의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정치인의 원형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유명한 정치학자 라스웰(Harold Dwight Lasswell)도 정치인은 사적 동기를 공적 동기로 포장하는 기술이 뛰어난 존재라고 했다.
요새 민주제의 최악의 폐해로 지적되는 중우정치(衆愚政治, mobocracy)나 포퓰리즘(populism)도 선동정치, 교언영색(巧言令色), 상징조작으로 권력을 잡으려는 후흑의 정치기술이 그 중심에 있다고 봐야 한다. 후흑의 정치는 권력을 잡기 위한 기술인가, 아니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기술인가라고 묻는다면 둘 다 적용된다.
후흑의 대가는 그 누구를 거론하기에 앞서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를 첫손가락에 꼽아야 할 것이다. 그는 현덕(賢德)자로 칭송되지만 후흑의 진수다. 중국 역사에 있어 유비를 능가하는 후흑의 대가는 모택동이다. 그는 특유의 치세로 강직한 품성의 장개석을 대륙에서 몰아낼 수 있었다. 황희 정승도 조선시대 최고의 후흑한(厚黑漢)이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김일성(金日成)을 능가하는 후흑한은 없을 것이다. 그는 소련군 대위 출신으로 후흑의 처세를 통해 그 자리에까지 올랐다. 얼마나 많은 정적을 후흑의 정치기술로 숙청했는가?
마키아벨리(Machiavelli)도 군주론을 통하여 역설하지 않았던가. 지도자는 사자와 같은 용맹함과 여우 같은 교활함을 겸비해야 한다고. 조선조 최고의 성군이었던 정조가 아버지를 죽인 노론 벽파의 우두머리 심환지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정조의 비밀 편지’에 잘 기술되어 있다.
현 정권의 우두머리 윤석열대통령이 통치과정 속에서 아첨꾼, 정상배, 이권 포식자 등에 포위되어 진정한 소통통로를 차단시키면 안된다. 어떤 역술가가 윤대통령 참모 중에 있다는 의혹도 썩 보기에 안좋다.
정치는 법의 세계와는 다르다. 법의 세계는 잠정적이지만 선과 악, 진과 위가 구별된다. 그러나 정치에는 법전과 같은 그런 답안지가 없다. 민주정치는 이성적인 시민이 주류가 되어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매우 감정적인 인간이 펼치는 인간 세계가 정치의 장이다. 요사이 팬덤정치를 보면서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이성적 시민이 펼치는 세계인가를 의심하게 한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도, 걸음걸이 자태에도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는 게 민주 대중정치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사냥개를 당대표를 만든 것을 대오의 기회로 삼고 분발하기를 바란다. 중용(23장)의 가르침대로 국민만을 바라보고 국민에게 정성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거기에 만물을 자라게 하는 큰 변화가 올 것이다. 대통령이 성공해야 이 나라도 성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