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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트롯의 디바, 현미, “떠날 때는 말없이....” 2023년 4월 4일 오전 9시37분.....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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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재즈 트롯의 디바, 현미, “떠날 때는 말없이....” 2023년 4월 4일 오전 9시37분.....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석열대통령, 문재인의 트로이 목마. 국민의힘, 노태우를 당의 바지로 만들어 호령한 전두환과 친박 병풍정치를 한 박근혜를 답습할 인물을  다시 뽑을 만큼 어리석지 않다.

조대형대기자 

 

재즈 트롯의 디바 현미(본명 김명선)202344일 오전 937분에 별세했다. 현미, 아니 김명선(19381,28~2023,4,4)은 한국 대중가요 재즈 트롯의 아이콘이었다.

특히 1960년대의 청춘남녀들에게. 서구 문화에 대한 동경과 판타지를 자극하며 매혹적인 청춘의 감각을 담은 그의 음악은 매혹, 그 자체였다.

 

가수 현미는 전형적인 음악인이였고 1938128일에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강동군(현재의 평양시 강동군)에서 8남매 중 셋째로 출생하였다. 원래는 출생지였던 강동과 평양에서 살았으나 한국전쟁이 한창 전개되던 1951년에 1.4 후퇴를 계기로 월남하게 된 현미는, 1957년 미8군 칼춤 무용수였던 현미는 공연에 불참한 여가수의 대타로 무대에 오르면서 가수의 길을 걷게 되면서. 1958년 미8SHOW 무대에서 절정의 명성을 얻었으며, 1962년 이봉조가 냇 킹 콜의 It's A Lonesome Old Town을 개사, 편곡한 밤안개라는 곡으로 가요에 정식 데뷔, 이른바 재즈 트롯의 탑 싱어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1963년에는 보고싶은 얼굴이라는 곡을 불러 이산가족 상봉이 한창이던 당시 그들의 아픔을 노래로 달래주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패티 김, 이미자 등과 함께 대한민국의 대표 여성 가수로서 인지도를 넓혀갔다.

 

현미를 눈여겨봤던 작곡가 이봉조는 현미에게 , 목동아라는 팝송 번안곡을 줬고 그때부터 팝과 트로트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불렀다. 이봉조의 노래만 불렀던 현미는 1962년 밤안개, 1962년 내 사랑아, 1963년 보고 싶은 얼굴, 1964년 떠날 때는 말없이, 1966년 무작정 좋았어요, 1966년 애인, 1967년 몽땅 내 사랑, 1968년 바람, 1971년 별, 1991년 왜 사느냐고 묻거든, 2001년 아내, 2017년 내 걱정은 하지마,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면서 한국 가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뛰어난 가창력과 쇼맨 쉽으로 현미는 국제적인 디바가 되지만, 그녀가 가장 원했던 가정에서의 소박한 행복은 가질 수 없었다. 파경에 이른 첫 결혼, 그리고 인생 일대의 사랑이었던 작곡가 이봉조와, 최근 연하남과 러브스토리까지, 드라마틱했던 현미의 인생은 하나의 잘 다듬어진 멜로 드라마다.

 

나는 그의 노래 가운데 18번을 삼아 자주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바로 떠날 말없이.

필자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 노래로 현미를 추억한다.

 

이 노래는 흥얼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우수에 젖고 마음과 가슴이 촉촉해진다. 노래는 조용하면서도 애잔한 곡이어서 다소 서글프고 구슬픈 음조였다. 삶의 구석구석에서 오는 여인의 외로움과 고달픔이 묻어 있다. 단순한 노랫말과 가락 같지만 이 속에는 나름대로의 삶에 대한 철학이 있었고, 인생을 대하는 슬기와 혜안이 담겨 있었다. 고달픔과 한을 노래 속에 녹이고, 슬픔과 아픔도 노래에 실어 보냈던 것이다.

 

 

영원한 이별 뒤에 오는 인연 이야기. 생명이 있는 것은 죽는다. 우리는 사회적 지위나 재산의 규모와 관계없이 언젠가 모두 죽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죽음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 여긴 채 죽음에 관해 생각하기를 꺼린다. 상실과 부재를 부정하고 싶은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에서 기인한 현상이겠지만, 오히려 삶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은 죽음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할 수 있다. ‘살아지다 사라져간다는 것에 대하여......’ 말이다.

 

가수 현미가 떠난 후의 주검에 빼곡히 새겨진 삶의 기록들, 남겨진 이의 마음에 무수히 저민 눈물 자국들, 아픈 기억들을 맨손으로 더듬어내는 일, 그리고 온몸으로 애도하는 일, 누구나 겪어야 하는 이 별에서의 영원한 이별, 그 슬프고 찬란한 이야기들......

 

지금 이 글을 쓰고 공간에 통곡과 절규가 사무치지만, 그 울림 안에서 삶의 소중한 지혜를 얻으려 노력한다. 그런데 왜이리 눈물이 날까? 눈물의 원인을 밝히고 슬픔의 성분을 분석하는 일이 참 부질없는 짓이기는 하나, 달리 생각하면 다시 이런 일을 또다시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필요한 측면도 없지 않겠다 싶다.

 

세상엔 심지어 누군가의 주검 앞에 사람을 사서 대행하게 하는 곡도 있다는데..... ‘왜 이리 슬프기만 한 것일까?’ 에 대한 집착들이 헛된 것임을 알지만, 누군가에 대한 동경과 기대없이 살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다만 무엇인가에 무너져 버린 뒤에도 그리움이라는 건, 슬픈 아름다움을 지니게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 까닭에.....

 

그리움과 좀더 멀리 훌훌 떠나버리고 싶은 갈망, 아무 곳이나 정처없이 떠나고 싶은 게.... 그것도 낯익은 곳이 아닌 전혀 다른 곳으로.... 누구도 모르는 곳에 존재하고 싶은 욕구가 가수 현미에 대한 추모의 글을 쓰면서 폐부 깊숙한 곳으로 스며든다.

 

어쩌면 가수 현미와 집시의 피 같은 게 한 방울 정도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나는 안다. 가수 현미는 바하만이나 룩셈부르크처럼, 생의 한가운데의 여주인공처럼 완전한 자유, 무섭게 깊은 사랑, 심장이 터질 듯한 환희를 추구하다가 절벽 같은 생의 한 복판에 던져졌다는 것을. 참을 수 없는 좌절과 절망이 자유혼으로 불타올랐던 그녀를 이승의 벼랑 끝으로 내몰았으리라.

 

때때로 신은 그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상에 오래 머물게 하지 않는다는 걸 감지한다. 죽음이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으므로 언젠가 천국에 가면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은 내 마음의 풍금소리처럼 은은한 떨림으로 남아있는 그 여자, 가수 현미, 아니 인간 김명선이다.

 

불꽃처럼 살다가 화약처럼 폭발해 버린 여자, 그녀가 거느리는 이미지의 연쇄들은 찬란한 광휘에 쌓여 있다. 불행한 아프로디테, 영원한 에뜨랑제, 밤안개, 떠날때는 말없이의 집시

청년 시절엔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오르가즘을 느꼈지만, 지금은 내 육체적 정자의 수액이 말라 버렸다. 오목의 보지를 지닌 여자였지만, 블록의 좃대가릴 어설프게 달고 다니는 남자들 보단 한층 멋지기만 했던 재즈 트롯 디바 현미의 생전은 이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