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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기대되는 혁명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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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기대되는 혁명 엿보기

정치혁명의 가치를 다시 만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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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형 대기자  

 

국민의힘의 내년 총선 승부수는 전 법무부장관 한동훈이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검사 출신 법무부 장관을 파격적으로 비상대책위원장에 추대했다. 1973년 서울 출생으로, 고리타분한 '영남당'의 이미지와는 결이 다르다.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없다'던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여당 대표까지 여의도 기성 정치의 틀을 깼다. 혁신의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는 반면, 윤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통합의 정치력을 보여줘야 하는 점은 그가 넘어야 할 벽이지만, 그 당신, 이른바 한동훈 자신을 주변 할 멤버들까지 정치 초년생들로 병풍을 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시대의 정치인들을 일컬어 추악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비굴할 정도로 야비한 군상들이 여의도 정가에 진을 치고 있지만 그들이 왜 추악한 것인지에 대한 접점은 여러 가지 해석들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필자가 여기에서 정치인들이 추악하다고 명시하는 것은 한미디로 압축된다. 예컨대 각자의 정치인 대개가 영리하다는 것이고,

영리하다보니 정치활동의 유불리 계산에 위한 셈의 정치가 횡행한다는 점이다.

 

이를 쉽게 말하면 정치계절의 때를 가리고, 기회를 엿보고, 내 선거, 남의 선거를 심하게 구분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치로 통용되는 공통용어, 이른바 국가를 위하고, 내가 속해 있는 당의 존속을 위한 목표의 가치는 중요하지 않다.

평소에는 가만히 있다가 자신의 정치적 키워드가 결합되어 질 때서야 국가를 말하고 당을 생각하며, 국민들을 어떻게 현혹시켜야 할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런 작자들을 불량 정치인이다. 재활용해서 쓸 수도 없다. 때문에 차제에 국민의힘 한동훈비대위원장은 자신만 정치적으로 순박하고 표백하다는 것에 만족하는게 아니라, 대대적인 혁신의 가치를 높이려면 국민의힘 공천 경쟁자들이 표백해야 한다일단 정치적 일탈이나 탈당을 일삼았던 자들은 공직선거 공천자격 자체를 부적격하게 하는 당헌 당규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정치권에서 이죽거리길 좋아하는 자들이 상대를 비난하고, 항의하고, 저지하는 것엔 출중할지 모르겠으나 정치 현실을 바꾸기에 충분하지 않다. 지금 한국 정치의 문제 상황은 그보다 깊기 때문이다.

특히 무기력한 국민의힘 구성원들과 권위주의적 검찰국가의 조합은 대단히 위험하다. 에리히 프롬은 나치 집권 몇 년 뒤인 1937무력감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에세이에서, 개인들이 정치사회적 과정에 그저 종속될 뿐 거기에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무력감이야말로 권위주의 지배의 사회심리적 기초라고 썼다. 그런 무력감에서 벗어나려면, 여기에 이르게 된 과정과 구조를 냉정히 인식해야 한다.

 

22대 총선 이후 한국 정치사회의 권력 지형 변화가 중요하다. 과거에 주변부였던 진보·민주화 세력의 일부가 중심부로 진입하고 주류에 동참하는 과정이 꾸준히 진행됐는데,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으로 이 새로운 시대 상황이 명확해졌다. 그에 따라 민주·진보·평등을 표방하는 권력 내부에 특권과 사익을 취하는 자가 생겨남으로써 자기모순이 심화됐다. 그 결과는 모든 정치적 진정성에 대한 신뢰의 붕괴였다. 공익을 사칭한 사익의 요소가 더 큰 공익을 파괴하는 비극이 반복됐다. 이제 한동훈위원장이 펼칠 일련의 혁명정치는 고독이 드리워 질 것이다.

때문에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한동훈위원장, 당신은 '로베스피에르'(1758~1794'당통'(1759~1794)이라는 이름을 들어 보셨는지.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을 대표하는 '영웅'들이다. 이들은 불꽃 튀는 혁명의 와중에 우정과 권력 투쟁의 그물에 휩싸이는 비운의 주인공들이었다. 필자는 이 시에서 혁명의 영웅이자 비극적인 생의 주인공들인 그 두 사람을 떠올린다.

 

애초 이들은 프랑스 혁명기의 급진적인 개혁 세력인 자코뱅 파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들이 꿈꾸었던 사회의 모습은 서로 달랐다. 로베스피에르가 엄격한 원칙을 바탕으로 한 이상적인 도덕 사회를 갈구했다면, 당통은 중용적인 태도와 화합을 바탕으로 현실 속의 평범한 인간들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원했다. 그래서 로베스피에르는 혁명기의 급진 좌파를, 당통은 중도파를 대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 두 사람은 이처럼 정치적인 태도가 달랐지만 똑같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합니다. 당통은 혁명의 동지였던 로베스 피에르에 의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17944). 로베스 피에르는, 그 자신이 주도한 자코뱅 정부의 공포정치를 진압하고 들어선 테르미도르 반동 정부에 의해 자신의 반대파들이 처형당한 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17947).

 

혁명 재판부 앞에 선 당통은 이렇게 말한다."더 이상 나 자신을 변호하지 않겠다. 나에게 죽음을 내려라. 그러면 영광스럽게 잠들겠다."

 

그는 혁명적인 무산 대중인 '상퀼로트(sansculotte과격 공화파)와 교분을 맺으면서 그들의 정서를 함께 나눴다. 관대함과 관용의 태도로 보통 사람들과 고락을 같이했습니다. 음모와 배신이 횡행하는 혁명기의 정치를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 맞추려고 했다.

 

당통이 죽은 지 3개월이 지난 727, 테르미도르 반동 정부는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일파를 체포하게 된다. 이후 반동 정부는 3일간 104명의 로베스피에르파를 처형한다. 곧 프랑스 전역에서 공포 정치의 주역이었던 자코뱅당에 대한 백색 테러가 자행되는 것이다. 로베스피에르 역시 테르미도르 반동 정부의 반란이 일어난 지 이틀째인 728일에 혁명 광장(콩코드 광장)에 설치된 단두대에 올라 죽음을 맞이한다. 사후에 그는 피에 굶주린 야수이자 소심한 부르주아로 비난을 받았으나 19세기에 들어서면 박해 받은 애국자로 재평가된다.

 

한동훈위원장, 그들은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이유로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피를 혁명의 제단에 바쳤다는 점에서 같은 생애를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그들 자신에 대한 사후의 역사적인 평가가 양 극단을 오가며 부침을 거듭했던 점도 비슷하다. 한 마디로 그들은 똑같이 30대 중반의 나이에 요절한 뜨거운 혁명가였다.

 

한동훈위원장, 그들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떠올린 생각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이 단두대 아래로 고개를 들이밀 때, 그들은 어떤 모습의 인간 세상을 꿈꾸었을까. 그들은 과연 그 죽음의 문턱에서 혁명으로 이루고자 했던 진정한 자유와 평등의 세상이 도래할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을까.

 

한동훈위원장, 서로 다르면서도 같은 죽음을 맞이한 당통과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은, 한동훈위원장이 분명히 해야 할 '자유''혁명'을 위한 싸움의 어려움을 말해 주는 것이다. 자유와 혁명은 '죽음'이 아니고서는 결코 이루지 못한다. '죽음'은 당통이나 로베스피에르가 보여주었던 육체의 죽음이기도 하고, 그들이 맞서 싸우려고 했던 모든 비인간적이고 반혁명적인 것들, 가령 상식과 평범을 벗어난 극도의 공포 정치(당통 등의 반대파들이 문제삼은 로베스피에르의 정치적 태도)나 원칙을 무시하는 지나친 현실주의(로베스피에르가 문제삼은 당통의 정치적 태도)로 대변되는 정신의 죽음이기도 할 것이다.

 

이번 한동훈위원장의 혁명의 칼에 의해 흘려질 ''는 과거 우유부단한 기득권 정치인들과의 철저한 결별을 상징한다. 그 결별의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자기 희생으로서의 ''가 아니겠는가. 그 결별과 단절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과 사회에 건재하는 구시대의 모든 잔재들이 사라질 수 있지 않을런지. 한동훈위원장 당신의 칼로 도려내고 꽃피워 질 4월 혁명이 추구한 진정한 '정신 혁명'도 이런 과정에서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전 국민들에게 한동훈의 혁명이, 혁명의 고양(高揚)이 아니라 추락에 대한 우울한 조사(弔詞)로 다가와서는 안된다. 멋진 사람, 의젓한 사람, 비굴한 사람들로 병풍이 쳐질 것이 분명하지만 그 선별을 잘 해야 한다. 필자는 멋진사람, 의젓한 사람과 같이 하면서 그간 황홀한 보지에 키스하지 못했던 정열을 다시 살려 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