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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성서가 성서를 죽이고 있다 성서의 역사, 전설의 신화인가. 실재 역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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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리스도교 성서가 성서를 죽이고 있다 성서의 역사, 전설의 신화인가. 실재 역사인가

 

조대형6.jpg

조대형 대기자 


이 글은 그리스도교 성서에 관한 담론인 동시에 기독교에 대한 필자의 의식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 글에서, 전설이나 신화로서의 성서에 대한 관점과 해석을 편견없이 기술하려고 노력했다. 이 글의 핵심은 성서가 성서를 죽이고 있다.’는 사실과 역사로서의 창조주 야훼와 예수그리스도를 단죄하여 요한이 예언하여 계시한 재림예수에 관한 올바른 가치정립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소명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집필한 것이다.

성서에 관한 관건에, 그리고 미래를 생각한 사람들이라면 한번 정도는 생각해 봤음직한 대목이다. 따라서 이 글의 우선에는 구약, 신약 성서의 당위에 관한 것을 말하기 위해서, 주로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각 장과 구절을 분석하여 글의 목적을 축출해 냈다.

 

이것을 말하는데는 특별한 성서의 지식이나 종교적 이론이 수반되어야 만 했던것은 아니었다.

성서의 각 장의 기술되어 있는 문장의 독해력과 최소한의 미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논리적 사고의 능력만 갖추고 있으면, 기독교의 그리스도 성서에 담고있는 화두들이 기독교 정신과 인류의 미래를 얼마나 훼손해 왔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성서의 기록된 역사로서의 실재에 관한 것이다.

 

성서의 기록되어 있는 말과 역사적 연대들이 실제로 존재하여 있는지에 대해서도 살폈다

여기에는 역사로서의 성서와, 선사, 그리고 유사로서의 실재와는 많은 괴리감도 있었다.

특히 암울했던 전제주의 시대를 재현하는 독재권력의 천박한 속물적 행태들이 성서의 곳곳에 노정되어 있었다.

그레서인지 성서에 기록된 것만 갖고는 세계인류의 희망을 말할 수 없는 한계지점이 있었고,빈약하 곤궁함의 채움을 요한이 예안한 게시록에서 보충할까 한다.

성서로서의 구약은, 헤브라이인들의 역사적 기원이다.

이를 사학적 시각으로 말하면, 헤브라이인들의 시조를 아브라함으로 보고 있으며, 그 시기를 아모리인들이 메소포타미아에 거주하기시작했던 기원전 3천년 대라고 보고 있다,

성서에 기록되어진 노아의 방주도 기원전 1700-1600년전 무렵에 이와 비슷한 홍수가 있었다고 전해지고는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전섫의 한 토막이다.

 

특히 헤브라이인들의 민족지도자인 모세가 이집트 삼각국 지대에서 헤므라이인들을 인솔하여 팔레스타인으로 귀의하는 시기를 기원전 1300년 경으로 보고 있는데 이 사실을 모세라고 자칭하지는 않았지만, 이 시기에 헤브라이인들이 이집트에 억류되어 있었고, 이들이 가나안 땅을 향해 떠났다는 사실로서의 역사적 기록이 있다.

이때 이들 레브라이인들의 종교는 야훼만을 유일신으로 믿고 있었다.

다만 미 무렵, 헤브라이인들은 국가라는 정부 구성읋 이루지못했으며 여호와가 헤브라이인들을 유인한 팔레스타인이 헤브라이인들의 터전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모세가 인솔하여 도착할 때는 이미 그 땅 즉 하나님의 행복의 젖꿀이 있는 땅이라고 말한 가나안 땅에는 정착민들이 있었다, 때문에 이들을 상대로 전투를 해야했고, 폭력과 살인을 저절렀으며, 약탈을 일삼아 왔다.

 

이토록 처절한 역사를 경험한 헤브라이인들은 종교지도자 사무엘에 의해 헤브라이 왕국을 수립하고 그 초대왕으로 사울을 추대한 것으로 역사에 기록되기 시작했고, 초대왕 사울이 상당한 전공을 세워 하나님의 나라 왕으로 평가받았다고 성서에는 기록되어 있지만, 사울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도량이 좁고 질투심이 강하며, 실제로 노이로제 증세로 심각한 지경에 이른데다가 헤브라이인들의 민족지도자로서 흠결이 많았다는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왜냐 하면, 사울은 이로써 헤브라이인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지 못했고, 그 휘양찬란한 영웅 사울이 길보아 산 전투에서 참패를 당한 후, 자결을 한다. 이것이 역사로서의 헤브라이 왕국 원년이다.

그리고 헤브라이 왕국의 사울 후계자는, 다윗이 되고, 왕국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등 헤브라이인들의 유일신인 야훼숭배의 중심지로 번영시칸다 그러나 헤브라이 왕국의 번영기는 솔로몬 시대의 이르러 열리기 시작했다,

그 배경에는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의 치세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번영의 시대를 솔로몬이 열었다고는 하지만, 적지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는데, 바로 부족들과의 문제였다.

솔로몬은 부족들과의 갈등을 차단하기 위하여 헤브라이인들의 전통적인 부족제도를 해체하고,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를 도입하려했으나, 각 부족들의 반발에 부딧혔고, 이러한 와중에 대토목공사를 일으켜 헤브라이 백성들을 노역장에 강제동원시켜는가 하면,과도한 세금을 징수하기 시작하면서 폭군이라는 원성을 들어야 했다.

때문에 솔로몬의 독재적 통치는 헤브라이 왕국의 패망을 예고하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헤브라이 왕으로 즉위하면서 파탄의 절정에 이르게 된다 부족들이 요청한 강제노역 중단과 세금인하에 대해서 더욱 강력한 압박을 가했다. 이로써 헤브라이 왕국은 사마리아 중심으로 반란이 일어나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국가를 만들었다. 전체 12개 부족 가운데 10개 부족들이 이스라엘 국가건설에 참여했고, 두 부족들만 헤브라이 예루살렘 왕국을 지지하면서 이 무렵부터 유대왕국이라고 불렀다. 헤브라이인의 두 왕국, 즉 이스라엘 왕 야합과 유대왕 요샤파테가 동맹국 관계를 유지하지만, 아시라아가 새로운 패권국가로 등장하면서 두 왕국의 운명도 위기를 맞고 결국 기원전 722년에 이스라엘 왕국이 정복당한다.

이 때 유대왕국은 아시리아 속국으로 전락되고, 유대왕국이 강력한 저항을 하지만 기원전 586년에 붕괴되고 바빌론으로 끌려가 억류생활을 하게 된다.

이로써 사울왕에서 시작된 헤브라이 왕국의 역사는 종말을 맞았고, 기원전 539년에야 고국에 돌아와 대표부족인 유대족을 중심으로 단결하기 시작했다.

세계인들은 이들을 일컬어 유대인이라고 부른다.

 

헤브라이인들의 전설, 역사, 법률 신의 계시등을 총망라 하여 집대성한 것이 구약성서이고, 기원전 1200년 경에 집필하여 800년 이상 걸린 것으로 사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 구약성서에는 헤브라이 종교의 성장과정이 노정되어 있고, 야훼가 세상의 유일신이며, 헤브라이인들은 그 유일신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시바이 산에서 모세에게 계시했다고 하는 십계명에 헤브라이 민족에 대한 야훼의 도덕적인 사항들을 구체화시켰다.

특히 헤브라이 왕국이 이스라엘과 유대왕국으로 분열된 이후 일련의 예언자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를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백백교의 전용해, 전도교의 박태선, 퉁일교의 문선명, 신천지의 이만의, 영세교의 최태민, 오대양의 박순자, 아가동산의 김기순, 영생교의 조희성 기독교 복음선서의 정명석, 만민중앙교회 이재록,전광훈목사 등과 같은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 것이다. 성서에는 이들을 예언자라고 일컫지만, 역사로서는 이들을 점쟁이, 무당이라고 말한다.

 

기원전 9세기 중엽 이스라엘 왕국 아합 당시, 엘리야, 예레미아, 에제키엘 등의 예언자들이 헤브라이인들의 신앙을 주도해 나갔는데 소위 이들이 말하는 예언으로서의 예수시대를 맞는 과정은 어떠 했을까?

 

유대인은 기원전 2년 중엽에 막카 바이오사가의 지도력으로 시리아왕국에게 과감한 해방을 요구한 끝에 승리를 거두고 독립국을 수립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기원전 63년에 로마에게 정복당했다.

다만 로마는 왕국의 종주권을 헤롯 왕가에 넘겨 주었다. 헤롯 왕은 잔혹한 정치를 펼쳤지만, 로마공화정 말기에 팔레스타인 지방 전체를 다스렸다.

 

그러나 헤롯이 죽은 뒤,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 갈리리 지역 등을 분할하여 통치하도록 했는데, 유대지역을 관할하는 아르켈라우스의 실격으로 인해 로마의 총독이 직접 통치를 했다. 이 지역 총독이 바로 예수를 죽인 폰더우스 비랄투스, 이른바 성경에서 말하는 빌라도다.

이 무렵 유대에는 구약성서에서 강조되는 유일신 야훼뿐만 아니라 여러개의 종교, 정치 등의 당파가 있었다. 친 로마파로는 헤롯왕과 사두개인, 그리고 민중에 대한 지도력을 갖고 있던 바리새인으로써 당시 율법학자의 다수가 바리새인파였고, 반로마 당파로는 열심당이 있었는데,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이 당파에 속한 사람들이 있어서 열심당의 사몬이라고 불렀다. 다른 한편으로는 속세를 버리고 유대지역의 황야와 사해부근에서 계율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에네세파가 있었다.

 

이 에네세파의 역사를 말하는 근거들이 1947년 사해 서쪽 연안의 동굴에서, 이른바 사해문서라는게 발견됨에 따라 많은 사료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예수가 올 것을 예언한 세례요한이 에네세파엣6j 교육받은 뒤, 독립을 했다.

 

요한은 스스로를 황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부르며 구세주가 오실 날이 멀지 않았으니 회개하고 그의 오심을 준비하라!”, 이러한 요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자들이 요한의 손에 이끌려 죄를 용서받았고, 그를 가리켜 세례요한이라고 부른 것도 요한이 행한 특이한 세례의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유명한 세례요한은 헤롯인터파스 로마왕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 직후 요한이 다시 살아있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사실은 그것이 예수에 관한 소문이었다.

 

예수는 기원전 6년 로마제국의 식민ㅌ지 국가인 이스라엘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

이 당시 이스라엘은 자신들만의 유일신을 믿는 유대교가 있었다.

그를 스스로를 여호와의 자식이라고 말하며 십계명을 생활규범으로 삼았다.

이 유대교에 여호와가 자신들을 구원해 줄 구세주를 보낼 것이라는 메시아 사상이 있었다.

이런 가운데 예수가 등장했다. 예수가 바로 구세주라는 설교는 세례요한에 의해서 전파되기 시작했고, 그는 당시 유대민족의 선지자로 추앙받고 있었다.

 

앞에서 설명한 바 있는 예언자로서의 역할, 이른바 점쟁이었던 것이다.

세례요한은, “때가 이르렀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설교했다.그런데 예수는 어찌된 노릇인지, 유대교의 편협성과 현실만족의 태만함을 맹렬하게 비난했다. 이같은 비난은 유대인들이 그간 누려오던 특권과 권력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예수를 죽이기 위해 예수의 제자들중 한 사람인 가롯유다를 매수하여 예수를 모함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유대인의 최고 평의회가 신을 모욕했다는 죄로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로마총독 빌라도 앞에 세웠다.

바리새인들은 또,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면서 민중을 유혹하고 로마에 반항을 일으키려 했다는 내용도 별도로 고소를 했다.

 

빌라도는 이때 예수를 로마의 이름으로, 또 유대인의 이름으로 처형했고, 그후 3일만에 부활하여 승천했다는 것이 성서의 주장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샤머니즘적 오랄 히스토리라는 평가를 하는 주체들도 있다.

예수가 죽은 뒤, 그리스도교의 세력을 넓히는데 큰 공헌을 한 인물이 바로 사도바울이다.

그는 유대왕국 외부에 전도를 통해 그리스도교가 유대교로부터 독립하여 세계적인 종교로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유대지방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의 한 분파라는 주장들을 하고 있고, 예수와 그 제자들은 유대교로부터 시작되는 예수의 부각이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반열에 있을 수 없는 한계를 알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포문을 연뒤, 의도된 분화룰 시도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구약성서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 헤브라이 왕국이 이스라엘 왕국이, 유대왕국이 복받은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며, 예수가 인류의 죄를 구원했다고는 하지만, 그 당시 인류의 범주를 유대로 보았다는 측면에서 볼 때, 성서에서 강조하는 구절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때문에 기독교인들이나 세상은 예수가 요한에게 말해 주었다는 재림에 관하여 관심을 갖게 되는 배경이다.

특히 지구의 역사를 과학적 사관으로 접근하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선악과 실재 사이에 샤머니즘이 지배하고 있다는 설들을 거부하기 힘들어 진다.
따라서 앞으로 전개하는 글에서는, 성서에서 말하는 언어와 예언, 언약, 계시들이 실제와 격차를 만들어 내는 요인이 무엇이며,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재림 예수가 현재에 존재하고있는지에 대헤서도 밝혀 나갈 것이다.

 

인류의 세계가 대공황을 방불케 할 정도로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이변들이 속출하고 세계의 냉전은 그 끝을 내다보기 어려운 침체의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그래서인지 기독교의 미래, 즉 재림예수의 희망을 말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나 필자는 재림 예수가 이미 인류세계에 와 있다는 것을 믿는다.

지금 기독교 사회에 존재하여 있는 성서가 어디에서 잘못된 것인지도 성찰해 보는 기회를 가져보려 한다. 필자는 이 글에서 성서의 개혁을 통해 재림예수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데에 동의한다. 그간 전 세계의 인류평화와 영원무궁함을 위해 번민하고 싸우고 헌신하는 동서고금의 목회자들에게 감사드린다.

필자가 이 글을 연재하는 동인도 그들 목회자들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혹여라도 성서의 기록된 것에 대하여 그 사실관계나 판단의 평가에 오역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이 글을 집필하는 필자의 책임이고 ,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걸 분명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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