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0 (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랑하는 사람이 안녕을 고할 때일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추도하며....................
조대형대기자
하늘 아래 가장 슬픈 것이 있다면 당신이 사랑했던 내가 알고 있는 나의 삶,
나의 모든 것이 되어 버린 것들에게 이별의 인사를 하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알아채기 전에 당신은 우리의 행복했던 시간들에게 안녕이라고 말할 것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울거나 그러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도 모르지 않아서 그냥 그동안 너무나 감사했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늘 아래 가장 큰 비극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당신이 사랑했던 것들과 작별을 하는 것일 겁니다. 그러나 이 슬픔에 대하여 흐느껴 울거나 그러지 않을 겁니다. 대신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할 겁니다.하늘 아래 가장 커다란 울음은 당신이 사랑한 아들이 듣지 않도록 숨죽여 작별인사를 하는 것을 겁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랑하는 사람이 안녕을 고할 때일 것입니다.
어제 필자와 인생의 한 편린들을 같이 해 온 인사가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고인의 소천에 애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옮깁니다.
인간의 삶을 100% 관통하는 죽음, 사랑하는 존재를 잃어가는 공포감과 잃음의 과정, 그 뒤를 바짝 따르는 그리움과 다시 차오르는 생의 욕구. 입 밖으로 낼 수 없던 마음의 단상들이 나의 페부 주변을 어른 거립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지극히 개인적이고 매우 비밀한 이야기로 이루어지지만, 모든 인간이 빠짐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100% 공동의 사건이라는 것이 죽음의 본질입니다.
죽음에 관한 타인의 이야기가 지금 당신에게는 너무도 상관없는 일일 수 있겠으나, 그날은 충격적 일만큼 홀연히 찾아온다. 그날이 오면, 무엇으로부터든, 누구에게로부터든 깊은 위로를 받고 싶어자는 본능을 외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죽음에 관한 것, 애도와 사별,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 견딤에 관한 애절함들.
죽음의 본질 자체가 원래 막연하고 모호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죽음은 우리에게 평생을 거쳐 두려운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가 순서입니다” 라는 번호표 따위 없이 날벼락처럼 훅 주어지는 죽음의 차례. 뉴스 속의 그 흔하기만 한 죽음의 소식들, 지인들의 부고, 그러나 사랑하는 내 가족에겐 없을 줄만 알았던 죽음을 만나는 순서는, 어제 잠자리에 잘 들고 오늘 잘 일어났는데 “미안해. 이번 차례는 너였어” 라고 냉소하듯 홀연히 찾아오게 됩니다.
언젠가 (혹은 이미) 당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기록이기에 죽음과의 만남이 매우 평범하고 당연하게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모르고 있었지만, 결국은 알아야 할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행인 것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늘나라로 떠나간 사람과 여전히 같이 사는 매우 독특하고 새로운 국면의 삶이고, 그 삶은 어쩐지 아름답기도 합니다.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익숙한 것들과 끊임없이 작별인사를 나누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에게 항상 버팀목이 되어준 슬프도록 강인했던 연인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지난 과거의 기억…. 자신의 모든 기억의 원천인 ‘삶’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우리들 모두는 죽음과 이별, 상실의 순간들을 돌아보며 “왜 우리는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작별해야 하는가?”라는
거대한 물음에 직면하는 지금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자신의 삶의 궤적 속에서 건져 올린 우리들의 독백은 “인생이란 모든 익숙한 것들과 작별하는 과정”이라는 생의 진리를 전하며 묵직한 여운을 남기고 갑니다. 우리는 또 어떤 것들과의 이별의 슬픔을 잊고, 나의 누군가가 아파도
여전히 내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삶의 배반이라고
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