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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즘', 그리고 정열의 배척, '참을 수 없는 이준석정치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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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르시즘', 그리고 정열의 배척, '참을 수 없는 이준석정치의 가벼움'

감나무 밑에 누워 연시 떨어지길 바라는 이준석의 守株待兎(수주대토)의 정치

 조대형사진.png

조대형대기자  


중국 송나라 사람 중에 농사를 짓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느 날 그루터기가 많은 밭을 갈고 있었다. 한창 일하던 중 갑자기 토끼 한 마리가 뛰어 오다가 밭 가운데 있는 그루터기에 부딪쳐 그만 목이 부러져 죽었다.농부는 그 이후부터 매일같이 그루터기 옆에 앉아 일을 하지 않고 토끼가 뛰어와 부딪히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토끼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그 사이에 밭은 황폐해져서 잡초로 우거지게 되었다.어리석은 농부는 웃음거리가 되었다.

한비자가 살았던 시기는 전국시대 말쯤인데 이 시대에는 전 시대에 비해 기술이 발전하여 생산성이 높아지고, 사회 성향도 변하고 있었다.

 

작금의 이준석 개혁신당의 대표가 이 꼴이 아닌가 싶어 그의 정치적 몰골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측은지심을 더해 주고 있다. 그루터기 옆에서 토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고, 감나무 밑에서 연시 떨어지기를 학수고대하는 정치를 하고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개혁신당 지붕 아래 모였던 이준석·이낙연 공동대표가 갈라서 각자도생의 길을 걷기로 하면서, 3지대 판도는 다시 한번 출렁이게 됐다. 4·10 총선을 꼭 50일 앞두고 다시 재편된 ‘4자 구도에서 누가 더 강한 생존력을 발휘할지 주목된다.

 

이낙연 대표는 20일 기자회견에서 법적 합당 이전에 신당 판도가 분명해진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했다.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은 지난 6, 이낙연 대표의 새로운미래는 19일 각각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당 등록을 완료해, 양쪽이 정식으로 통합하려면 선관위에 합당 신고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이날 결별로 이낙연 대표와 김종민 최고위원, 박원석 전 의원 등은 새로운미래에서, 이준석 대표·양향자 원내대표와 조응천 최고위원(원칙과상식), 금태섭 최고위원(새로운선택) 등은 개혁신당에서 각자 총선을 준비하는 결말에서 보듯이 이들의 정당 깃발을 나부끼기만 한 것이었을 뿐, 그 깃발의 상징이나, 그 깃발의 함의된 정치이념이나 정책의 지향점을 아예 존재하지 읺았다는 게 드러난 것이다.이들의 성패는 일단 지지율을 얼마나 끌어올릴지에 달려 있는 것이지만, 통합 전인 지난달 30~21일 한국갤럽이 전국 성인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면접 여론조사에서 양쪽 지지율은 각각 3%였고, 통합 선언 이후인 지난 1315일 같은 기관의 조사에선 4%에 그쳤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단순계산하면 정당지지율 3%는 비례대표 1석을 배정받는 데 그치는 탓에, 지지율 제고는 두 당의 첫번째 숙제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 현역 의원을 추가로 얼마나 더 확보할지, 경쟁력 있는 인사를 얼마나 영입해 합리적으로 공천할 것인지 등에 따라 성적표가 달라질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감나무에서 연시가 떨어져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난망한 지경에 있는 현실이다.

 

아마도 이준석이 국민의힘을 박차고 나갈 때만 하더라도 국민의힘 윤석열대통령을 두목하는 패거리들이 현역 의원을 고사시킨 후, 대통령실 진영인사들로 총선을 치룰 것이라는 자신의 정치적 수판을 과신했던 결과, 이른바 나르시즘에 빠져 허덕이고 꼴이 된 것이다.물론 한때 국민의힘 당 대표로의 화려한 등장과 불명예스러운 퇴장에 이어 다시 총선에 도전하는 이준석에게는 특히 자기도취적인 인격장애가 더 심각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우리의 정치속성 상, ‘정치를 추구하는 자는 권력을 좇는다. 권력을 이상적인 또는 이기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든지, 아니면 권력이 주는 우월감을 즐기기 위해서 추구하든지 간에 그렇다. 자기도취적인 우월감이 정치의 근거를 제기하는 동기의 하나다. 일반적으로 자기애(自己愛)로 번역되는 나르시시즘은 그리스 신화로부터 유래한다. 미소년 나르시스는 많은 애절한 구애를 물리치고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해서 입맞춤하려다 그것이 자신의 반사된 모습인 것을 알고 슬픔에 빠져 자살했다. 바로 그 자리에 핀 꽃이 수선화였다는 내용이다.이를 다시 강조하여 말하면, 이준석 자신은 뛰어난 능력과 재주가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끝없는 성공, 권력, 존경, 아름다움, 이상적인 사랑과 환상에 대한 강한 집착을 추구하고 있었고, 자신은 특별한 존재이기에 다른 명망 있는 인물들만이 이를 인정할 수 있고, 이들만이 자신의 교류대상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열광적이고 과도한 지지의 요구, 특별한 대우를 기대하고 이러한 기대는 당연히 이루어진다는 생각, 다른 사람의 감정과 욕구를 이해하고 이들과 일체감을 갖는 감정 이입의 결핍, 다른 사람에 대한 빈번한 질투와 시기와 함께 다른 사람이 자기를 질투하고 시기한다는 믿음, 거만하고 건방진 행동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에서, 이준석의 자아도취적인 면면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준석 정치의 오늘에서 우리의 미래를 보는 듯한 불길함을 느끼고 싶지는 않다. 우리 정치의 각 집단이 저마다 정의와 명분을 내세우며 갈등하고 대립하는 그 틈바구니에서 정치를 추진시키는 힘이 나오고 권력이 균형을 잡아간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염려스러운 것은 나르시시즘이 가지고 있는 어쩔 수 없는 자폐적 속성에 대해서이다.인류는 인간만이 특별하고 위대하다는 나르시시즘을 깨며 발전해 왔다. 코페르니쿠스, 다윈, 프로이트의 발견이 그렇다. 한 개인이나 사회가 성숙한다는 것 역시 나르시시즘을 극복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자기만 바라보다가 호수에 빠져 죽은 나르시스의 신화는 나르시시즘 끝에는 자멸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특히 같은 정당 안에서 벌어지는 동지들끼리의 이전투구(泥田鬪狗)는 나르시시즘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끝없이 이어지는 특정 후보 발가벗기기는 그 사람은 국회의원 혹은 국회의원 후보가 되면 안 된다나와 우리의 도덕성이 그에 비해 월등히 낫다는 고도의 자부심과 자기 확신 속에서 이루어져 왔다. 그것은 마치 성자(聖者)가 악한(惡漢)을 다스리는 듯한 모습이다.그러나 그에게 돌을 던질 자 별로 없는 것 같다. 그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부도덕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나서면 안 된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나머지 현실과 소망을 분간하지 못하면 안 된다. 현 정치권의 도덕성 회복은 더 근원적인 곳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심각한 본말전도(本末顚倒)는 옥석(玉石)을 함께 태우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이까지 버리는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 글의 끝에서 주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신념을 갖지 못하면 정치인의 자격이 없지만, 신념이 상대방에 대한 무조건적 강요로 이어지면 민주주의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사실이다. 자기 신뢰와 안정감을 형성하면서 점차 자기 중심성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인간 성숙의 과정이다. 신념을 갖되 상대방의 주장을 받아들여 자신의 입장을 조정해 나갈 줄 아는 것이 성숙한 정치인의 모습이다. 파괴적 나르시시즘은 증오와 극단주의의 확대 재생산을 초래한다. 이제 우리 정치도 유아기적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