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0 (월)
조대형 대기자
온고지신이란 말이 있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뜻으로서 <논어>에 나온다. 일찍이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지난 것을 충분히 익혀서 새로운 것을 알면 그로써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知新 可以爲師矣)’라고 했으니, 오늘을 알기 위해서는 옛일을 알아야 하고, 내일의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과거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또한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 국민의힘 한동훈비대위원장이 지난 7일 ‘4·10 총선 이후 기회가 되면 차기 대선에 나설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때 인생은 그때 생각해 보겠다”며 “인생 자체가 마음대로 안 되기 때문에 스트라이크 존을 넓혀 놔야 한다”고 했다. 특히 한 위원장은 이날 관훈토론회에서 “4월 10일 이후 이기든 지든 제 인생이 꼬이지 않겠나. 저는 그것을 알고 나왔다”고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고, “함께 가면 길이 됩니다.”라는 언어는 현재의 상황을 에들러 표현한 것일게다.
그런데 이 말을 곱씹어 보면 한동훈의 현란한 정치수사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직설하여 말하면 이런 것이다. 일단 한동훈 자신은 자신의 향후 삶이 꼬여만 갈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예단하므로써, 녹녹지 않은 정치미래를 점친 것으로 이해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왜 울퉁불퉁한 삶이 예측되어진 사람이 같이 가면 길이 된다고 했을까?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말하는 꼬여갈 인생과 같이 가면 길이 된다는 것은 이미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실천으로 보여주었고, 그럼에도 그들 민주당 지지세력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무지의 길을 이재명과 함께 하고 있다.
민주당의 이재명은 대통령에 출마할 당시 꼬이는 행보를 시작했다. 그 꼬이는 정치적 삶을 모를 사람은 흔치 않았고, 양탄자가 깔린 길이 아닌 가시밭 길을 함께 하는 민주당의 현상에 대해 한동훈비대위원장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민주당의 이재명과는 뭔가는 다르다는 것을 정치적 사유를 말하려고 했다는 것은 모르지 않지만, 그 행보는 이재명이 먼저 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 매력은 상실된 것이고, 뭔가 다른 정치적 브랜드를 창출해내지 않겠느냐는 기대는 이미 저버린지 오래다. 왜냐 하면, 애초에 정치판이라는 게 살풀이를 하는 굿판과 다를 것이 없어서 이번 총선에서도 소위 정치인 및 지식인들과 상류 기득권 층들이 국민들을 반씩 갈라 패싸움을 시키고 싸움의 결과가 난 뒤에도 감정과 이해득실에 따라 추악한 말의 성찬을 늘어놓고 있다.
이들의 선동에 의해 대다수 일반 국민들은 지역, 세대, 이념에 따라 패를 나누어 자신이 대선에 출마한 양 열을 올렸다. 그리고 진 쪽은 아직도 결과를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이 무의식에 자리잡아 있고 이것을 겨냥해 소위 진보지식인들이라는 사람들이 선동을 하고 있다.
까놓고 이야기하면 이런 것들이다. 국민의힘이 이기면 새로운 미래가 열리고 이재명의 민주당이 이기면 역사가 후퇴한다는 논리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동훈이 말한 총선이 끝나면 자신의 삶아 꼬일 것이라는 점, 없었던 길도 같이 가면 길이 된다는 이 고고한 것 같은 수사도 사실은 정치적 술수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역대 정권들은 경제민주화, 공정사회, 기회균등, 복지국가, 정의사회 등을 외치지만 실제로 누가 되든 공정한 사회와 복지국가는 오지 않았고 근처에 가지도 못했다. 출발부터 특정 재벌에 기대어 전 국토를 부동산 투기판으로 만들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넘을 수 없는 격차를 만든 정권도 특권철폐와 반칙이 없는 사회를 말했고 비즈니스 프렌들리 하던 정권도 동반성장과 공생을 말하며 이너서클 저들끼리만 동반성장을 했다. 결국, 이 대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정치권의 진보∙보수, 좌∙우 개념 또한 집권을 위해 나눈 인위적이고 추상적 용어이지 실제 아무런 이념적 용어조차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 시기에 중요한 것은 모두가 더불어 최소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고 구조적 불행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동료의식과 책임 및 연민을 느끼는 것이다. 누차 이야기했다시피 구조적 세계 장기불황 속에 추락하고 낙오하는 수많은 서민들이 있다. 중산층조차 미래가 예측하기 힘들며 보이지 않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 시대의 정치 담론은 적어도 일본식 장기불황, 고령화, 저성장, 고실업 사회로 향해가는 한국사회의 개선과 변화에 집중돼야 한다. 봉투니 애국심이니를 갖고 따지는 것은 철없는 서생들의 한가한 잡담에 불과하다.
새로운 변화와 개혁은 미신과 사이비 신념과의 싸움이자 가짜 이념과의 투쟁이다.
왜 이 시대의 젊디 젊은 정치인, 아니 한동훈은 고통받는 서민과 청년, 노년 등의 구체적 고통과 현실을 외면한 채 허구의 이념과 평균도 안 되는 어수룩한 말, 이른바 “내 인생은 꼬일 것이다. 함께 하면 길이 된다.”는 말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가? 진정 뭘 몰라서 그러는가? 자신의 이해 때문에 그러는가? 말장난 하지 말고 개혁과 변화, 부패청산의 내용마련과 실천에 주력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