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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의 학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광인 김민기의 마지막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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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적막의 학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광인 김민기의 마지막 순간들

그 마지막 아듀의 현장에 부재해선 안될 조영남,양희은,송창식, 조용필에 대한 석연함

 

조대형사진 2.jpg

조대형대기자 

 

 

극단 학전, 이별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그 초연의 시작됨이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광인의 예술가 김민기의 삶과 고적의 흐름에 따라 바래져가는 사랑에 상처받으며, 극단 학전의 이별 앞에서 부서져 내린 한 사람의 역사가 녹아 있다.작별이라는 이름 앞에서 누구나 사랑하며 쌓아왔던 모든 것이 부정된 것처럼 큰 상실감을 느끼지만, 그 시간에서 멀어져 아팠던 감정조차 사그라지면 밤하늘의 별처럼 가끔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진 않다. ‘누구도 그랬듯 괜찮아질 거라고. 그러니 그때를 위해 지금은 마음껏 아파하라고. 아팠던 기억조차 추억으로 남을 테니

 

지난 14일 밤 서울 대학로 소극장에서 김민기의 명곡 아침이슬이 울렸다. ‘학전간판으로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지난달 28일부터 진행된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기획한 박학기가 가운데 섰다. 권진원, 노래를찾는사람들, 알리, 정동하도 함께 했다.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스타인 황정민도 노래했다. “나 이제 가노라/저 거친 광야에/서러움 모두 버리고/나 이제 가노라라는 가사는 학전의 운명과 공교롭게 조응했다.

 

학전은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뮤지컬 연출가. 대한민국 포크송과 뮤지컬의 역사를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광인 김민기의 삶의 젖줄이었다

 

1991315일 개관해 15일 폐관한 학전은 33년간 359개의 작품을 기획·제작했다. ‘학전, 어게인 콘서트는 학전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가수와 배우들이 연 공연이었다. 공연은 예매 시작과 함께 매진됐다. 이날 주제는 김민기 트리뷰트’. 김민기는 사비를 털어 학전을 만들었고, 이곳에서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김광석 콘서트 등을 선보였다. 2004년부터는 수익성이 적은 어린이·청소년극을 꾸준히 선보였다. 결국 만성적자와 김민기의 투병 끝에 폐관을 결정했다.

 

문득 누군가가 김민기의 근황을 물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그의 일탈적 행동에서 오는 기행을 전제로 하고 묻는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대답은 둘 중 하나이다. 그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을 경우에는 정상적인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쉽게 그의 모습을 발견하는 경우에는 기행을 일삼고 있을 것이라 지레 짐작해 버린다.

 

혹 어떤 사람은 그의 그러한 기행은 기질적인 것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인 김민가가 짐짓 기행을 일삼는 것이라고 아예 단정해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기질적인 것인지, 아니면 가식적인 것인지는 김민기 본인의 해명을 듣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여하튼 김민기는 기인임에는 틀림없다. 연극인이건 음악인이 아니건 그의 기행에 대해서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 그의 작시와 작곡과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것을 발견하고 다시 한 번 놀란다. 사랑에 대한 목마름, 이별에 대한 흐느낌, 그리움에 대한 절절함, 그리고 삶에 대한 구도자적인 순결함의 편린들을 그의 작품 속에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도저히 그러한 시편들이 기행을 일삼는 그의 일상에서 건져지리라는 것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면 그의 기행이 의도적인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는 기행을 일삼는 것일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이 그가 살아내기에는 너무 벅차서 마치 미친 사람처럼 기행을 일삼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부조리한 세상을 정상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시인의 영혼이 너무 순수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날 학전의 마지막, 그 아듀의 시간에 항암 투병 중인 김민기는 끝내 무대에 서지 못했지만, 피날레는 김민기의 공연으로 장식됐다. 개런티 없이 출연을 자청한 이들은 김민기 트리뷰트를 주제로 친구’, ‘그 사이’, ‘가을 편지’, ‘그날’, ‘작은 연못’, ‘상록수’, ‘봉우리등 김민기기 빚은 주옥같은 노래들을 재해석했다.

 

권진원과 함께 이 세상 어딘가에를 듀엣으로 부른 황정민은 극단 학전 1기 오디션에 합격해 지하철 1호선이란 작품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김광석 형이 공연하면 내가 나가 티켓도 팔고, 관객들에게 자리도 안내했다면서 저의 20대를 기술이나 테크닉 없이 오롯이 열정 하나로만 보냈다. (김민기) 선생님에게 기본이라는 게 뭔지를 다시 배웠다고 데뷔 시작을 돌아봤다.

 

1951331일 전라북도 익산군 함열면(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함열읍)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의사였는데, 6.25 전쟁 중 북으로 퇴각하던 조선인민군에 의해 살해당해 산파였던 어머니 혼자 자식들을 키워야 했다. 휴전 후 가족들과 서울특별시로 이주했고, 서울재동국민학교와 경기중학교,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했다. 1970년에 초기 대표곡인 아침 이슬과 가을편지(고은 작사), 꽃 피우는 아이 등을 작곡했고, 양희은과도 YWCA의 포크 동아리 '청개구리'에서 만나 공동 작업을 시작했다

 

1973년 초에는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의 극음악을 작곡해 무대 공연 경험을 쌓기 시작했고, 19744월에는 소리굿 아구의 대본을 쓴 뒤 작곡가 이종구가 곡을 붙여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했다. 이 소리굿은 공연윤리위원회의 제재를 받고 상연 금지 처분을 당했지만,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체포 위협을 무릅쓰고 재공연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졸업 이후에도 미술 활동이나 교편을 잡지 않은 채 막노동이나 공장 취업 등으로 생계를 꾸리면서 양희은의 음반 '거치른 들판의 푸르른 솔잎처럼'에 들어갈 노래들을 작곡해 주었다. 하지만 음반 발매 때는 작곡자로서 가명을 사용했음에도 수록곡 중 '늙은 군인의 노래'가 군부와 장교들의 비위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또 금지곡 판정과 음반 판금 조치를 받았다. 이 시기의 공장 노동자 생활이 뒤이어 나오는 '공장의 불빛' 프로젝트의 토대가 된다.

 

양희은이 김민기의 재동초등학교 1년 후배. 아침 이슬을 양희은에게 건넴으로써 양희은의 히트적인 데뷔에 도움을 주었다. 이외에도 양희은의 많은 히트곡들을 작곡하여 양희은이 70년대의 일약 스타로 도약하는 것에 크게 공헌했다. 사실상 지금의 양희은을 만든 것이 김민기라고 말하는 것도 과하지 않을 터이지만, 이날 양희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시인 김지하와 정열의 가수 김광석은 이미 광활한 은하수 세계에 저며들어 있어 오지 못했을 것이지만, 로큰롤 가수 한 대수, 포크송 가수 송창식, 힙합 가수 조영남, 조용필, 들국화의 최성원은, 잔인하다는 생각을 들만큼 그 학전의 마감의 장에 부재하였다.

. “모든 생명의 끝은 멸종일 것이고, 김민기의 학전 또한 소멸되어 갔지만, 그 학전의 예술혼은 버티고 있으며, 생명도 아직 살아있다.